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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협력 역사

2차 세계대전 후

공적개발원조(ODA)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 많은 식민지 국가가 독립하면서 이들 국가에 만연한 빈곤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1945년 UN 헌장에서 '경제, 사회, 문화 및 인권과 관련된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협력 증진'을 천명하고, 이후 세계식량농업기구(FAO), 세계보건기구(WHO), UN아동기금(UNICEF) 등 전문적인 긴급구호 기구가 설립되었습니다. 이러한 기구를 통해 1950년대에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난 신생독립국에 긴급구호가 이루어지며 ODA가 본격화되었으며, 이는 이후 다자원조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한편, 양자원조는 냉전체제 하에서 미국과 소련이 서유럽과 동유럽에 대한 전후복구를 경쟁적으로 지원하면서 본격화되었습니다.

1960년대

UN은 1961년 제16차 정기총회에서 1960년대를 '제1차 개발의 10년'으로 선언하고, 개발도상국이 매년 5%의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도록 선진국 국민총생산(GNP)의 1%를 개발도상국 원조에 사용하도록 촉구하였습니다. 개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은 1961년 OECD DAC의 창설로 이어졌으며, 이후 OECD DAC은 개발원조 정책의 주요 이슈를 공론화하고, 회원국을 중심으로 국가별 원조통계를 표준화하여 비교하고 분석하는 등 ODA 대표 논의기구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1960년대에는 세계적인 산업화 기조와 함께 대규모 산업 프로젝트에 집중되어, 신생독립국의 사회기반시설, 즉 도로와 철도 등 인프라 건설에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그러나 인프라 구축 등 산업화를 통한 경제성장이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견해에도 불구하고 개발도상국의 빈곤문제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1970년대

1970년대에, 처음으로 원조가 빈곤감소 및 실업감소라는 명확한 목적과 연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는 경제성장이라는 간접적 방법으로는 빈곤감소 및 불평등이 해결되는 것이 불충분하므로, 빈곤퇴치를 위해 보다 더 직접적으로 빈곤층을 대상으로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에 기반한 것으로, 세계은행은 “성장과 재분배”에, ILO 및 UNDP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BHN: Basic Human Needs) 충족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소농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 기반 통합농촌개발 프로젝트가 활성화되었고, NGO의 역할이 확대되었으며 봉사자가 파견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중심 다부문 프로젝트는 복잡한 설계와 행정역량 부족 등 여러 이유로 어려움에 부딪혔습니다. 이 시대는 오일쇼크로 원조규모가 일시적으로 감소했으나, 개발도상국이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원조액이 다시 증가하였고, 원유수출국의 원조가 늘어난 것도 특징입니다.

1980년대

1980년대에 원조 기관들의 주요 관심은 성장의 주요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시각에서 공공부문의 축소가 이루어졌고, 이는 개도국에 대해서도 비슷한 공공개혁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멕시코와 브라질의 국가지불유예 선언이 계기가 되어 민간부문 확장, 무역자유화, 정부지출 감소를 목표로 한 구조조정프로그램이 실시되었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교육, 보건과 같은 핵심적 공공서비스 제공의 축소를 야기하였고, 협력국의 개발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일률적인 처방이라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80년대 중반 이후에는 공여국들의 경제 위기극복과 공공부문 확장, 저소득국의 상황악화로 인해 ODA가 다시 증가하였고, 일본이 가장 큰 공여국으로 부상하였습니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대한 주요 보고서들이 출판되었고, 대규모 재난 사건이 급증하면서 NGO를 통한 긴급 구호가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1990년대

1990년대에는 냉전이 막을 내리면서 이념적 경쟁 수단으로써의 원조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구소련 체제전환국들에 대한 관심도 커졌습니다. 이 시기는 민주화 지원과 같이 원조에 있어 정치적 차원이 강화되었으며, 92년 유엔환경 개발에 관한 회의(리우회의)를 계기로 환경과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한 관심도 증가하였습니다. 세계화의 진전과 함께 고채무빈국 이니셔티브(HIPC Initiative)형성을 비롯하여, 인권, 인구, 아동, 여성, 식량 관련 국제 결의문이 채택되어 추후 국제개발협력의 기반을 다지게 됩니다. 또한 이 시기는 섹터 프로그램, 정책 대화, 건전한 국가행정(Good Governance)을 갖춘 개도국에의 원조집중현상, 역량개발에 대한 관심증가가 특징입니다. 이때는 선진국들의 재정적자, 원조효과에 대한 회의감, 환경분야로의 재원이동 등으로 원조액수가 감소했으나, 인도적 지원은 늘어났습니다.

2000년대

2000년대 들어서는 새천년개발목표(MDGs)가 수립되면서 공적개발원조의 핵심목표가 절대빈곤퇴치임을 재확인하였습니다. 세계은행과 IMF도 부채탕감 및 양허성 차관 지원조건으로, 거시경제개혁, 구조조정, 사회정책전략을 포함하는 빈곤감소 전략 보고서를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9-11 테러 이후 테러리즘, 대량 난민발생과 같은 문제가 대두되는 분쟁/취약국가에 대한 안보지원이 크게 증가했으며, 재난구호에 대한 관심도 확대되었습니다. 그리고 몬테레이 UN 개발재원회의, 항공권연대기금 등 혁신적 개발재원 마련을 위한 회의들이 개최되었습니다. 원조효과성 향상에 체계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구체적 목표와 지표가 파리선언으로 도출되었으며, 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예산지원 등의 프로그램형 접근법과 비구속성 원조를 강화하기로 하였습니다.

2010년대

2010년대에 들어서는 다시 원조가 무역, 투자, 송금 등 다른 재원과 함께 개발에 기여하는 바에 무게가 실리며 "원조와 원조 이상의(Aid and Beyond)"논의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더불어 기후변화, 분쟁취약성, 공정무역 등 최근 부각되는 범지구적 과제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중국과 같은 신흥공여국 및 기업, 재단, CSO를 포함하는 민간개발자금의 비전통적 원조 주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새로운 원조체제에 대한 구상도 진행되고 있습니다.